제목 4월 11일 장충단 탐방 후기(최승일 가족) 등록일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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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장충단 공원 탐방

지난 주말에, 가족끼리 넷이서 나들이 삼아 장충단 공원에 다녀왔다. 45일에 단장님께서 올려주신 봉사활동 대체 과제를 보고, 그 중 내 귀에 가장 생소하게 들린 장충단 공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같았으면 한창 소공재 봉사활동을 다녔을 이 시기에, 코로나19로 인하여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워서 다녀온 것도 있었다.

 

나는 장충단 공원에 대해서 별다른 조사를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름조차 생소하였기 때문에 직접 가서 하나하나씩 알아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갔지만, 도착하니 공원 바로 옆에 동대입구역 6번 출구가 있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장충단 공원에 가고 싶은 사람 중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공원 옆에 차를 세우고 나서, 가장 먼저 내가 본 것은 이한응선생기념비이다. 기념비는 전부 한문으로 되어 있고 다른 설명이 쓰여 있지 않아서 지도를 보고 기념비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한응 선생에 대해서 궁금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을 해 보았고, 찾아보니 영국에서 구국 외교를 펼치다 순절을 선택한 외교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을 받으신 분이기도 하시다. 1899년에 영국 대사관으로 처음 발령 받으신 후 한반도 정세 분석에 관한 공사 업무를 담당하셨고, 함께 파견된 다른 인물들은 모두 국내외의 압력이 심해짐에 따라 귀국하였으나 계속 영국에 남아서 외교 일을 맡으셨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중 제2차 영일동맹이 맺어지고 다음 해 을사늑약 이후 더 이상 외교관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시고 순국하셨다고 한다.

 

그다음 내가 본 것은 이준 열사 동상이다. 이준 열사는 알다시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조선이 일본에게 불평등하게 당하고 있는 것들을 알리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헤이그 특사분들 중 한 분이시다. 이곳에서 뜻밖에 이준 열사를 만날 수 있었어서 또 한번 더 이준 열사가 하셨던 업적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여담으로 몇 달 전에 집에서 가족끼리 유튜브로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님께서 예전에 강사 시절 헤이그 특사에 관한 강의를 하시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때 이준 열사에 대해서 기억하기 쉽게 재밌게 표현한 내용이 있었다. 그걸 보고 여기에서 이준 열사 동상을 봐서 그런지, 우리 가족 모두가 이준 열사를 기억하고 있어서 더 인상 깊은 동상이었다.

 

이준 열사 동상을 보고, 쭉 직진을 해서 걷다 보면 공원 이름이 왜 장충단 공원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비가 있다. 바로 장충단 비이다. 장충단 비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호이다. 고종 황제의 아내인 명성황후가 죽게 된 을미사변당시에 순사한 2명의 충신 및 군졸들의 혼을 받들기 위해서 만든 제단이 장충단이다. 장충단에는 본래 사당과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장충단비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장충단 비 바로 앞에 장충단 터라고 해서 표석이 있었는데, 이 표석을 보니 소공재에서 자주 하는 표석 닦는 활동이 떠올랐다. 순간 비닐봉지와 물티슈를 가지고 와서 닦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가게 될 때는 그러한 준비물들을 챙길 것이다.

 

이번 탐방은 가족 모두가 함께해서 정말 특별하게 즐거웠다. 또한 장충단 공원은 내가 본래 모르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어서 그것 또한 뿌듯하고 재밌었다. 장충단 공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점은, 이준열 사나 이한응 선생이 장충단 공원과는 어떤 관련이 있기에 이곳에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끝으로 내가 소개한 내용 외에도 파리 장서비, 사명대사 동상 등등 다른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도 있어서 다들 한 번씩 가볼 수 있으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